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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배우 프로필

 

 

 

 

 

이름: 김지미(본명 김명자)

나이: 1940년생, 향년 85세(2025년 12월 9일 별세)

고향: 충청남도 대덕군(현 대전광역시)

학력: 덕성여자고등학교

가족: 슬하 1녀, 8남매 중 일곱째

 

 

 

 

주요 경력:

  •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
  • 1960~90년대 약 450~700여 편의 영화 출연
  • 1986년 영화사 '지미필름' 설립
  • 1995~2000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초대 위원
  •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
  • 2010년 영화인 명예의 전당 헌액
  • 2016년 은관문화훈장 수훈

현직: 은퇴(2000년대 이후)

소속: 前 한국영화인협회

비고: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1960~7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를 이끈 대표적 여배우. 은퇴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거주하다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별세

 

 

김지미 별세 빈소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가 2025년 12월 9일 미국에서 향년 85세로 별세했습니다. 최근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으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영화인 총 연합회와 한국영화배우협회는 현재 영화인장을 준비하기 위해 유족과 논의 중이며, 아직 빈소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고인은 은퇴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딸과 함께 조용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한국영화계의 전설로 불리며 60년 넘게 영화계에 헌신한 김지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영화계와 팬들은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작품 활동

 

 

김지미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17세에 데뷔한 후, 1958년 멜로드라마 '별아 내 가슴에'로 일약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이후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장희빈', '춘향전' 등에 출연하며 196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를 장식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임권택 감독의 '비구니', '길소뜸', 김수용 감독의 '토지' 등이 있으며,

 

 

 

 

전성기이던 1960~70년대에는 한 해에 30여 편씩 영화를 찍었습니다. 평생 약 7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1985년에는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해 제작자로도 활약했습니다.

 

김지미 가족 딸

 

 

 

 

김지미는 첫 번째 남편 홍성기 감독과의 사이에서 딸 한 명을 두었고, 두 번째 남편 최무룡과의 사이에서 딸 최영숙(별명 밍크)을 낳았습니다. 최무룡과의 사이에서는 아들도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어린 나이에 곰탕 사고로 불행한 사고사로 잃었습니다. 딸 최영숙은 단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손정호 씨와 결혼했습니다.

 

 

 

 

김지미는 은퇴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딸과 함께 거주하며 손주들과 평범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생전 김지미는 가정적인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딸에게는 좋은 엄마이고 싶어했으며, 젊은 시절 남자들을 많이 만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할 정도로 딸을 아꼈습니다.

 

김지미 나훈아

 

 

1976년 36세의 김지미는 7살 연하의 가수 나훈아와 만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며, 이는 연예계에서 두 번째 연상연하 커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혼인신고는 하지 않고 1976년부터 1982년까지 약 6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김지미는 나훈아에게 예절, 서예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것을 가르쳤고, 두 사람은 대전에서 '초원'이라는 식당을 운영하며 생활했습니다.

 

 

 

김지미는 평범하게 식당을 경영하며 살고 싶어했지만, 나훈아가 가수로 복귀하면서 둘 사이가 멀어져 결국 1982년 헤어졌습니다. 김지미는 훗날 "내가 한 결혼은 3번뿐이다"라며 나훈아와의 동거를 후회했다고 전해집니다.

 

김지미 최무룡

 

 

김지미는 첫 남편 홍성기 감독과 이혼 후 홍콩 합작 영화 촬영 중 배우 최무룡과 가까워졌습니다. 1962년 11월 31일 두 사람은 간통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어 수감되었고, 이는 당시 초대형 스캔들이었습니다. 당시 최무룡은 배우 강효실과 결혼해 세 딸과 백일 무렵의 아들 최민수를 둔 유부남이었습니다.

 

 

 

 

김지미는 자신이 살던 집을 처분해 최무룡이 아내 강효실에게 지불해야 할 위자료 248만원과 채무 78만 원을 대신 갚아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딸을 낳았으나, 최무룡의 계속되는 영화 흥행 실패로 1969년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6년 만에 이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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